집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미디 모듈과 마스터 키보드를 버렸다.
(미디 모듈은 악기 소리를 내는 장비, 마스터 키보드는 음원이 없는 건반이라고 보면 된다.)
미디 모듈은 당근마켓에서 검색해보니 드물게 수요가 있어서 10만원 넘게도 팔리는 경우도 있는 것 같은데
잘못 팔았다가는 신경 쓰이고 피곤해질 것 같아서 그냥 대형폐기물로 접수해서 내놨다.
...
이 장비들은 아주 오래전에 당시 친했던 친구가 유학을 가면서 나에게 주고 간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이걸로 음악을 해보겠답시고 끄적거리다가
다음에 이걸로 피아노를 배워봐야지.
다음에 해봐야지.
올해 목표는 악기를 배우는 것!
다음에...
다음에...
이렇게 미루다 점점 안 쓰게 되었고 먼지만 쌓이고 자리만 차지하다가
며칠 전에 건반이 엎어졌던가, 충격을 받고 건반 몇 개가 깨져버려서 이참에 정리하게 됐다.
사용 빈도로만 보면 진작에 처분했어야 했는데
선물 받은 것을 버리기가 미안해서 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
그 친구와는 몇 년 전에, 아마도 15년 전쯤? 어떻게 연락이 닿아서 한 번 만났었다.
귀국해서 한국에 있고 직장은 압구정쪽이라고 해서 그 근방에서 약속을 잡고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당일에 그 친구가 갑자기 회사 일이 바빠져서 약속 시간을 미뤘고,
겨우 퇴근하고 만났을 땐 서로 피곤해진 상태였던 것 같다.
반가움도 잠시, 몇 마디 대화를 나눴지만 서로 소식을 모르고 지내온 시간이 너무 길어서인지
서로가 낯설었고 대화가 이어지지 않다.
급기야 그 친구의 입에서 "야! 대화가 통하는 게 하나도 없잖아!"라는 식의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그게 그 친구와의 마지막 기억이다.
어떻게 헤어져서 돌아왔는지도 모르겠고
내 일기를 뒤져봐도 그 내용을 찾을 수가 없다.
...
중학교 때 같은 반으로 인연이 되어 말 그대로 중2병 시기를 같이 보냈던 친구.
나에게 X-Japan을 알려준 친구.
야 오늘 니가 줬던 사켄88이랑 A33 내놨다.
잘 써보려고 했는데 흐지부지 하다가 그렇게 됐네.
미안.
작성일 : 2025-06-17 / 조회수 :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