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에피소드] 8일 간의 오로라 헌팅

번아웃이 올 것 같아 휴식이 필요했다.
몇 년 전에 한 번 본 뒤로 계속 생각났던 오로라가 보고 싶어졌다.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코로나 시국에 격리 없이 입국할 수 있고 안전하고, 만에 하나 오로라를 보지 못하더라도 다른 볼거리가 있는 곳을 찾아보니 결론은 아이슬란드였다.
그래서 지난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8박 10일간 다녀왔다.

이번 여행에서 다른 것은 못 보더라도 두 가지 꼭 보고 싶은 경치가 있었다.

하나는 키르큐펠 산이었고

다른 하나는 추락한 비행기의 잔해였다.
욕심이지만 가능하면 거기서 오로라까지...
인터넷이나 여행 가이드북에서 봤을 때 너무 멋있어 보여서 직접 보고 싶었다.

그래서 동선도 서부와 남부로 한정했고,
첫 2박을 키르큐펠 근처(서부)로 예약하고 그 이후 숙소는 일기예보를 보며 비교적 구름이 적은 지역으로 이동하며 당일에 예약했다.



1일차

공항에서 차를 렌트하고 바로 서부 스나이펠스네스쪽으로 갔다.

꼭 보고 싶었던 키르큐펠 산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았다. 강풍이 심하고 구름이 가득했다. 아아 ㅠㅠ

밤에는 구름이 좀 걷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구름 낀다는 예보는 잘 맞더라. ㅠㅠ
1일차는 오로라 포기.



2일차

일기예보에서 서부쪽은 내내 흐리고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아서 예약해둔 숙소는 포기하고,
일기예보상 구름 사이로 약간의 틈이 보이는 Arkanes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이곳도 구름이 가득해서 좌절...

밤에 장노출로 사진을 찍어보니 구름 사이로 미약하게나마 녹색빛이 찍혔다.
눈으로는 구분이 안되어 오로라를 봤다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ㅠㅠ

앞으로 1주일 간의 일기예보를 보니 서부~남부는 대체로 흐리거나 비가 온다고 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 날 밤엔 꿈에서도 오로라를 찾아다녔다.



3일차

일기예보를 보니 남서부 Hella 쪽이 구름이 적어보였다.
그래서 그쪽으로 숙소를 정하고 이동했다.

이동만 하면 심심하니 중간중간 차를 세워 경치를 감상하기도 하고
굴포스, 싱벨리르 국립공원 같은 관광 명소에도 들렀다.

도착한 숙소는 주변이 탁 트여있어서 좋았다.
구름이 끼어있었지만 지난 이틀과는 느낌이 달랐다.
경험상 오로라가 뜨는 날엔 '하늘이 고요한' 공통된 느낌이 있었다. 이 날이 그랬다.

그리고 드디어...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
눈으로는 회색~흰색으로 보였지만 하늘에 굵은 먹선 같은 것이 움직이는 오로라가 보였고 몇 번 번쩍거리기까지 했다!

타임랩스로 찍은 영상.

폰카로도 찍어봤는데 이 정도까지 나와주었다. (아이폰12프로, 30초 노출, 무보정)

위 사진은 오로라로 인해 밝게 나와서 잘 안보이지만 좌측에는 은하수도 찍혀있다.
사진을 찍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숙소 위로 둥근 고리 같은 오로라가 살랑이며 춤을 추고 있어서 동영상으로도 남겨왔다.

황홀하고 너무 좋았다.
이제야 비로소 부담을 내려놓고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4일차

아이슬란드의 남부, Vik 부근이 맑을 것으로 예상되어 이 날 비행기 잔해를 보러 가기로 했다.
숙소를 잡고 쉬면서 체력을 보충한 뒤 일몰 전에 비행기 잔해를 보러 Solheimasandur로 갔다.

이런 길을 1시간 정도 걸어야 했다
끝이 없어 보이는 지평선을 보며 걷는 기분은 묘했다.

4km 좀 안되게 걸으니 보고 싶었던 추락한 비행기의 잔해가 나왔다.
70년대에 미군 수송기가 불시착한 것이 그대로 남아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고 한다.

도착해보니 서너팀이 오로라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중 한 팀은 드론은 물론 비행기를 밝힐 조명까지 챙겨온 걸로 봐서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는 팀 같았다.

자리를 잡고 앉아 넷플릭스를 보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1시간쯤 지났을까, 옆에 있던 사람이 오로라가 떴다고 알려줬다.

위 사진은 사진빨과 보정빨이다.
실제로는 비행기쪽에 불빛이 없어서 비행기는 실루엣처럼 보였다.
구름은 별로 없었지만 오로라가 약하고 낮게 깔려서 눈으로는 희미하게만 보였다.
그래도 보고 싶었던 광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시 걸어서 돌아가는 길은 빛이 하나도 없어서 좀 무서웠다.
혹시나 오로라를 보러 이곳에 가실 분은 옷 따뜻하게 입고 가시길.
비행기 착륙지점 옆이 바다라 해풍이 불어 많이 추웠다.



5일차

이미 오로라를 두 번이나 봐서 만족했지만 내심 한 번 더 봤으면 싶었다.
기상도를 보니 아이슬란드 전역에 구름이 끼었지만 구름 사이로 키르큐펠 부근이 살짝 드러나 있었다.
그래서 남부에서 다시 서부로 이동했다.

하지만 도착해보니...

아아... 구름이 가득했다. ㅠㅠ
그나마 군데군데 하늘이 보이는 점이 다행이랄까. 일단 쉬면서 밤을 기다렸다.

그리고...

밤에도 구름은 여전히 많았지만 잠깐 구름이 걷혔을 때 원하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이 사진도 역시 사진빨이다.
오로라가 약해서 눈으로 봤을 땐 다 구름처럼 보였다.
장노출로 사진을 찍어보니 짙은 구름처럼 보였던 것은 실제로도 구름이었고 옅은 구름처럼 보였던 것이 오로라였다.

그래도 이 날은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던 '원하는 오로라 사진을 건질 때까지 죽치고 앉아서 구경하다 오는 것'을 이룬 날이었다.



6일차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해야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려면 출국 72시간 전에 코로나 PCR 검사 음성 결과서를 받아야했기 때문에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수도 Reykjavik 로 이동했다.

중간에 올들어 화산 활동을 시작한 곳에 들렀다.
9월에도 용암이 분출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여행한 기간에는 화산 활동이 없었다.
길을 잘못 들어 뷰포인트까지 오르는 길이 험난했지만 언덕 위에 올라서 본 경치는 거대한 자연이 주는 웅장함이 있었다.
위 사진의 검은색 부분이 전부 용암이 식은 것들이다.

이 날은 레이캬비크 지역이 흐리고 구름이 가득해서 오로라를 볼 수 없었다.



7일차

이 날도 흐리고 강풍이 불고 비도 내리는 등 날씨가 좋지 않았다.
코로나 검사를 받고 (5시간 뒤에 메일로 음성 결과서를 받았습니다. 비용은 50유로) 시내를 둘러보고 기념품을 사러 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밤이 되어도 구름이 걷히지 않아서 오로라는 포기했다.


8일차

출국을 하루 앞두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꽃보다 청춘에서 조정석이 번역 어플로 '핫도그 세 개'라고 말했더니 'Hotdog world'로 번역되었던 그 핫도그를 사먹기도 했다.
약 5천원으로 비쌌지만 현지 물가치고는 저렴한 편이었고 맛있었다.

여담으로 위 사진에 얼핏 보이지만 마스크를 쓴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만 꿋꿋하게 쓰고 다녔다.

오로라는 충분히 봤지만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서 오로라 투어를 신청했다.
날씨가 흐리긴 해도 현지 여행사는 경험이 많을테니 괜찮은 장소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일반 투어보다 좀 더 비싼 비용(약 10만원)을 내고 Small group tour를 신청했는데 약 30명쯤 버스에 타서 small group 느낌은 아니었다.

레이캬비크는 비가 내렸지만 외곽으로 나가니 다행히 비가 그쳤고 구름도 별로 없었다.
공항이 있는 케플라비크 지역의 외딴 곳에 버스가 정차했고 1시간 가량 머물고 돌아왔다.

그곳에서 희미한 오로라였지만 사진은 몇 장 건질 수 있었다.
마지막 밤에 선물을 받은 기분으로 여행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귀국

이렇게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렸던 여행은 처음이었다.
그것이 스트레스와 부담을 주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오래 기억에 남을 여행이 될 것 같다.

오로라를 보고 싶었고
운좋게 여덟 밤 중 네 번을 봤고
하지만 그 과정이 수월하지만은 않았던,
그런 여행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오로라를 보는 것이 버킷리스트에 올라있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 여행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작성일 : 2021-11-03 / 조회수 :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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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리턴즈 (2021-10-01 ~ 2021-10-10)